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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y Potter

[레귤스네ts] if.1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머글이었다면



인사해 내 소꿉친구야-릴리 에반스의 발랄한 목소리를 뒤이어 그녀의 뒤에서 약간은 깡마른 인영이 드러났다. 새하얀 피부는 햇빛을 거의 보지 못한듯 약간 창백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고 짙은 흑발과 흑안은 햇빛에도 그 기운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어깨까지 자란 머리칼을 뒤로 아무렇게나 묶은 모습은 썩 단정치 못하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저들을 노려보다 못해 뚫릴 듯 쳐다보는 것이 팔뚝에 괜시리 오소소 소름이 돋기까지 한다. 방학이 되고 마루더즈들이-피터 페티그루는 집안에 일이 생겨서 오지 못한다고 했다-릴리가 사는 동네로 놀러오자 릴리가 그들을 제 소꿉친구에게 소개해준다고 할 때 따라오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라고 잠깐 생각이 들었다.

"세브가 낯을 좀 가려서 그렇지 정말 친절하고 상냥해. 너희들이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물론 마법얘기는 세브 앞에서 꺼내면 안되고! 작게 소곤거리고는 릴리는 씽긋 웃으며 예의 그 소꿉친구란 그녀에게 우리를 소개했다. 저 반응이 친절하고 상냥? 낯을 두 번 가렸다간 살인이라도 일어날 것이다.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멀린의 콧구멍에 멩세코 저 반응은 절대 상냥 축에도 못 들 것이라 시리우스가 작게 소곤거리자 제 옆구리를 가볍게 찌르는 리무스의 행동에 작게 입을 삐죽였다. 그 와중에 제임스는 제 연인-으로 혼자만 생각하는 것이지만-의 소꿉친구라는 말에 벌써부터 호감을 사려 안달이 나있었다.

"안녕 검은 아가씨? 나는 여기 아리따운 백합아가씨의 미래의 남편이 될 제임스 포터라고 한다네."

 

한 쪽 눈을 찡긋거리는 것은 덤이었다. 순간 그녀의 눈에서 기이한 이채가 감돌았다. 이런 바보 머저리같은 새끼가 내 릴리의 연인이라고? 당장이라도 그리 말을 할 것만 같은 눈빛은 매섭게 제임스를 향했지만 그는 눈치챈 것인지 아닌지 모를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포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은 이제 그만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을텐데!"

"오 이런, 사랑스런 릴리. 이제 그만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겠어?"

 

금세 능글거리는 제임스의 마수에서 릴리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제 아무리 학교 친구라도 이건 너무 무례한 것이 아닌가? 슬며시 릴리를 잡아당겨 제 뒤편으로 슬쩍 숨기니 제임스의 눈이 묘하게 가늘어진다. 아무래도 제 생각처럼 제 편이 되어줄 친구는 아닌 모양이라고 제임스는 생각했다. 저 행동은 마치 뭐랄까...엄마를 뺏기기 싫은 아이의 모습일까? 제임스는 의외의 모습에 낄낄대며 배를 잡고 웃었지만 그걸 지켜보는 나머지 인원들의 시선은 그리 썩 좋지 못했다. 시리우스는 보다못해 제임스의 등을 퍽 내리쳤는데 숨도 못 쉴 정도로 큭큭대던 제임스는 그 충격에 앞으로 훽 고꾸라졌다.

 

"으악 패드풋! 너무한 거 아냐?"

"너가 계속 미친 놈처럼 웃으니 나는 그걸 멈춰준 것 뿐이라고, 프롱스?"

 

씨익 웃으며 능청스레 제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시리우스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세베루스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낮익은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가 떠올린 사람과 지금 제 앞에서 실시간으로 개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 인간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레귤러스..."

"응 세브, 뭐라고?"

 

옆에서 말리고 있던 릴리는 세베루스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잘 못 들었는지 반문했지만 제임스와 시리우스, 리무스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행동을 멈췄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자신들이 들은 이름이 릴리의 친우가 확실한 머글이라면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삽시간에 굳어진 얼굴의 시리우스와 당황한 제임스와 릴리를 뒤로, 리무스 루핀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음 스네이프라고 했나? 아까 뭐라고 했는지 다시 말해줄 수 있을까?"

"레귤러스라고 했다만? 그냥 너희 중에 내가 아는 그 사람과 닮은 사람이 있어서 생각났을 뿐이야."

 

이번에는 릴리도 상황파악이 된 듯 시리우스를 한번 흘긋 보았다. 네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에 사람들의 분위기에 다소 둔감한-릴리의 경우 예외였지만-그녀도 뭔가 저가 말실수를 했는지 제 말을 다시 한번 곱씹기 시작했으나, 자신의 말에서 그들이 이상해할만한 부분을 딱히 찾질 못했다. 시리우스는 이제 세베루스를 경계하는 듯한 눈빛을 비추었다.

 

"너가 얘기하는 레귤러스가, 혹시 레귤러스 블랙이냐?"

"...그렇..다만? 그런데 너희가 레귤러스를 어떻게 알지?"


 

이제는 그녀가 오히려 그들을 경계하는 눈빛을 띄기 시작했다. 머글이 비록 차남이긴 하지만 블랙을, 심지어 성도 아닌 이름을 부를 정도의 사이라는 것에 그들은 경악했다. 그것은 특히 시리우스가 강했다. 제가 집을 나오기 전이나 후이나 블랙 가는 통상적으로 머글을 혐오했다. 그들은 스스로 마법사, 특히 순수혈통은 위대하며 머글은 물론 그들의 피가 섞인 머글태생과 혼혈 또한 혐오의 대상으로 분류하여 잡종(mud-blood)라 모독하는 짓마저 서슴치 않는 족속들이었다. 레귤러스는 저와는 다르게 그런 집에서 오리온과 발부르가의 그런 사상들을 세뇌당하듯이 들으며 자라왔고 그들의 말을 어길 정도로 강인하지 못하다는 것을 시리우스는 너무 잘 알았다. 그런 레귤러스가 머글에게 이름을 허락해? 심지어 볼 것도 없는 이 여자를? 멍하니 있는 그들을 뒤로 하고 시계를 흘끗 쳐다보던 그녀는 이네 낭패라는 듯 작게 미간을 모았다.

 

"릴리. 정말 미안한데 나 조금 있으면 브라이언 교수님과의 선약이 있어서 그런데 먼저 가봐야할 거 같아."

"어, 아아 그, 그래. 먼저 가봐 세브."

"오랜만에 만났는데 오래 못 있어서 미안 릴리. 그럼 나중에 보자."

 

그쪽들도 이만-예의상 작게 끄덕인 그녀는 정말로 늦은 것인지 빠른 걸음을 놀리며 멀어져갔다. 그녀가 시야에어 사라지자 시리우스는 생각하던 것을 멈추었다. 아직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세 사람에게 시리우스는 다짐했다는 듯 말했다.

 

"저 스네이프라는 여자, 미행하봐야겠어. 어떻게 레귤러스를 알고 있는 것인지 알아봐야할 거 같은데."

 

시리우스의 말에 빛을 내며 동의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제임스와 알게모르게 동참하는 리무스를 보며 릴리는 속으로 작게나마 세베루스의 평탄지 못할 미래의 생활에 애도를 표했다.

 

*

 

두꺼운 책들을 잔뜩 옆구리에 끼고 낑낑대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세베루스의 뒤를 쫒으면서 제임스와 시리우스, 리무스는 처음보는 머글들의 학교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투명망토를 쓰기엔 세 사람이 너무 커버렸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아직 투명 마법이 익숙치 않은 리무스가 투명망토를 사용하고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투명 마법을 이용해 모습을 감추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문 근처에서 교수처럼 보이는 늙은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황급히 주변에 있던 큰 화분 뒤로 몸을 숨겼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무표정을 풀지 않는 그녀에 시리우스는 작게 혀를 내둘렀지만 남자는 무엇이 즐거운 것인지 어깨를 두드리며 그녀에게 웃어보였다.

 

"그래, 궁금한 것은 풀린 모양이니 난 이만 가보겠네, 스네이프 양."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세베루스를 지나쳐 그들에게 다가오는 남자에 마루더즈는 더욱 몸을 움츠렸다. 그가 지나가고 세베루스가 계단을 오르는 것을 보자 시리우스는 마법으로 제임스와 리무스에게 살짝 신호를 주고는 그녀를 따라 올라갔다. 3층에 다다른 그녀는 문 하나를 밀고 들어갔고 따라 들어간 그들을 이내 그곳이 도서관이라는 것을 알았다. 생각보다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마법을 푼 후 책장 사이로 몸을 숨기자 책 사이로 그녀가 잔뜩 들고 왔던 책을 반납하고 책장을 뒤적이며 지나다니는 것이 보였다.

 

"흠...쟤도 어지간히 공부벌레인 것 같네."

 

그래봤자 우리 릴리가 더 똑똑하겠지만!- 어느새 삼천포로 빠지려는 제임스의 뒷통수를 한번 세게 갈긴 리무스는 아프다며 씨근덕거리는 제임스를 조용히 시키고 그녀의 모습에 집중했다. 의외로 조용하게 제 할 일을 잘하고 있는 시리우스에 리무스는 제임스만 신경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내심 속으로 안도했다. 책을 다 고른 것인지 세 권 정도를 들고 책 장 옆 탁상에 앉아 책장을 등지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 그녀로 인해 그들은 조금더 자유롭게 책장을 방패로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젊어보이는 여성 사서가 시리우스의 얼굴을 보고 붉히는 것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시리우스는 깔끔하게 무시하고 그녀의 뒷통수에 집중했다. 가끔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책에 집중하는 모습에 왜인지 눈을 떼기 힘들었다. 첫만남과는 다른 차분한 분위기 때문일까, 종잡을 수가 없다.

 

"시리우스."

"어, 어어? 왜 무니?"

"저기 봐봐."

 

리무스가 부르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 시리우스가 다소 멍청한 소리를 내며 리무스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자 어떤 남성이 그녀에게 접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남성의 얼굴을 확인했으나 아쉽게도 자신들이 알고있던 얼굴은 아니었다. 말을 전달하려는 목적이었는지 그녀에게 무언가를 속삭인 후 바로 떠나는 모습에 의아해함도 잠시, 그녀가 책들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에 그들은 화들짝 놀라 옆 책장으로 급히 몸을 숨겼다. 대출카드를 작성하고 책들을 팔에 들어올 때처럼 낀 그녀는 다소 빠른 걸음으로 문 밖으로 나갔다. 얼핏 보인 표정은 묘하게 입꼬리가 올라간 채였다.

 

시리우스에게 다가가 연락을 하고 싶다는 사서를 무시하곤 그녀를 따라 건물 밖으로 나오니 그녀는 캡모자를 푹 눌러 쓴 남성의 앞에 있었다. 방금까지 자신들이 보았던 머글들의 옷차림과는 묘하게 다른, 비슷하게 흉내내려고 노력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 그들의 직감이 말해주었다.

 

"레귤러스."

"레그라고 불러도 된다니까요 세베루스."

 

레귤러스! 정말로 머글인 세베루스와 레귤러스가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에 마루더즈, 특히나 시리우스는 크나큰 충격에 빠졌다. 정말로 제 하나뿐인 동생이었다니. 저도 모르게 그들에게 달려나가려던 몸을 리무스가 간신히 붙들어 옆 수풀로 이끌었다.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타박하는 리무스에 흠칫 놀란 시리우스가 그들을 다시금 보자 레귤러스는 이미 모자까지 벗어둔 채였고 햇빛 아래에서 빛나는 얼굴은 영락없는 제 동생의 것이었다. 모자때문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는 세베루스의 손길은 퍽 다정했다. 그 손길에 머리를 온전히 내맡기며 그녀를 바라보는 레귤러스의 눈은 다정하다못해 꿀이 떨어질 것만 같은 달콤함을 띄고 있었다. 세베루스는 그것을 눈치채진 못한 것 같았지만 말이다.

 

"너도 방학한 거야?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세베루스는 잘 지냈어요?"

"나야 뭐. 그럭저럭..."

"또 끼니는 건너뛰고 공부하는 건가요? 공부도 좋지만 세베루스는 너무 말랐다고요. 뭐라도 먹는 게 좋겠어요."

 

세상에 멀린 맙소사. 레귤러스가, 그 레귤러스가 밥 먹는 것까지 걱정하다니! 시리우스의 턱은 빠질 듯 벌어졌고 제임스는 이 기념비적인 광경을 촬영해야한다면서 사진기를 꺼내려 들려했다. 물론 리무스에 의해 제지되었지만. 어느새 세베루스의 책까지 뺏어든 레귤러스는 그녀를 이끌고 건물을 벗어나고 있었다. 어느새 리무스는 투명망토를 뒤집어쓰고 수풀을 빠져나가고 있었고 시리우스는 제임스와 눈을 한 번 마주한 후 투명마법을 걸고 그들을 뒤따라 나갔다.

 

레귤러스와 세베루스는 자그마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바깥엔 큰 창문이 있었기에 그들의 모습이 휑하니 다 보였다. 마법을 풀고 골목 한 쪽에 자리 잡은 그들은 마법을 걸어 두 사람의 대화를 좀 더 자세하게 들기 위해 준비했다. 입을 작게 삐죽이는 세베루스의 타박은 싹 무시하고 의자를 끌어당겨 그녀를 앉히고는 본인도 자리에 앉은 레귤러스는 익숙한 듯 메뉴판을 꺼내 이것저것 주문하기 시작했다. 점원은 주문하는 메뉴들을 열심히 적으며 레귤러스를 연신 힐끔이더니 음식이 나오자 서비스라면서 자그마한 케잌 하나를 내왔다. 우아하게 웃으며 그것을 받아든 레귤러스는 그것마저 세베루스의 앞으로 내밀었다.

 

"레귤러스."

"레그에요. 전 정말로 괜찮으니까 세베루스나 좀 먹어요. 그렇게 말라서는 뭐도 안된다고요."

 

능청스레 말하며 스테이크를 잘라 입 안에 넣는 레귤러스에 세베루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본인도 조금씩 잘라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저거 완전 머글식 데이트 맞지? 제임스의 물음에 머글 수업에서 배웠던 시리우스는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멍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기숙사 학교는 어전히 별로야? 요새는 그저 그래요. 식사를 하며 간간히 대화를 이어나가는 두 사람은 즐거워 보였다. 특히 레귤러스는 호그와트에서 항상 보아왔던 차갑게 갈무리된 비웃음이 아닌 정말로 즐겁다는 웃음이었다. 냅킨으로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는 사소한 행동들이 그들을 다정한 연인처럼 보여주어서 시리우스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대체 언제부터?

 

"다 먹었나요? 일어날까요?"

"그래."

 

앉았을 때처럼 의자를 가볍게 빼준 레귤러스는 그녀가 일어나자 카운터에서 계산을 했다. 자신이 하겠다며 말리는 세베루스의 팔을 가볍게 내리고는 자연스레 머글 돈을 꺼내 계산하는 모습은 정말로 낯설었다. 식당을 나오면서 도란도란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뒤를 쫒으면서도 마루더즈들은 의아했다. 레귤러스는 대체 스네이프를 언제 만났는가? 의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려는 즈음, 갑자기 레귤로스가 멈칫하더니 세베루스의 손을 조심스레 붙잡았다.

 

"레귤러스...?"

"세베루스 잠시만, 미안해요."

 

그 말을 시작으로 레귤러스는 뛰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뛰는 레귤러스에 당황한 세베루스가 발이 꼬이긴 했지만 이내 제대로 이끌려 같이 뛰기 시작했다. 뛰는 두 사람에 당황한 그들은 황급히 레귤러스가 뛰어간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지만 현직 수색꾼이라는 이름이 헛된 것은 아닌지 세베루스를 달고도 골목을 요리조리 잽싸게 도망다니는 것이 종래는 그들의 눈을 피해 골목 저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젠장! 숨을 헐떡이며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리무스와 그런 그를 부축하는 제임스는 씨근덕거리며 욕설을 내뱉는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다.

 

*

 

"헉, 허억...레, 레귤러스. 잠깐만...좀..."

"아, 미안해요 세베루스. 힘들었죠?"

 

어느새 공원 안까지 들어온 레귤러스는 뒤를 한 번 흘낏 돌아보더니 뛰는 것을 멈추었다.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안색은 창백했다. 밥을 먹은지 얼마 되지않은 채 무리한 운동을 했더니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이 속이 뒤집혔다. 아까 먹은 고기를 다시보는 것은 사양인데, 작게 중얼거리는 그녀를 가볍게 들어올려 근처 의자에 앉힌 레귤러스는 드물게 당황한 얼굴을 했다. 괘, 괜찮아요 세베루스? 내가 너무 무리하게 뛰도록 한 건가요? 안절부절 못하는 은회색 눈과 마주하게 울렁이는 속에도 세베루스는 작게 웃어보였다.

 

"괜찮을 거야...아마도."

"그래도요. 제가 가서 물이라도 사올게요."

 

지치지도 않은 것인지 벌떡 일어나서 금방 달려가 제 시야에서 사라지는 레귤러스를 보던 세베루스는 다시금 뒤틀리는 속에 미간을 한없이 찌뿌렸다. 그 와중에 제 책을 다 챙겨 뛴 것인지 약간은 따뜻해진 책들이 의자 위에 가지런히 놓인 것을 그녀는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레귤러스는 갑자기 왜 뛴 거지? 평소에 그런 애가 아니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 릴리와 이따 쇼핑 나가기로 했는데 몸 상태가 계속 이러면 힘들겠는걸. 릴리와의 약속을 상기시키다 문득 그녀가 소개시켜주었던 세 사람이 떠오르자 세베루스는 왈칵 얼굴을 구겼다. 그 갈색머리의 유해보이는 인상의 남자는 그나마 예의바른 사람같아 보였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이미 그녀의 기준에 멀리해야할 사람 1,2였다. 릴리는 대체 어쩌다 그런 녀석들과 친해져선! 이를 바득바득 갈으며 저를 잔뜩 노려보던 검은 머리의 미남자를 떠올렸다. 다시 생각해봐도 분명...

 

"세베루스. 오래 기다렸죠."

"아."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 레귤러스는 물통을 건네었다. 받은 물을 마시니 속이 조금은 편안해졌지만 약간의 울렁거림은 여전했다. 후, 하고 한숨을 내쉬니 그녀의 옆에 살며시 앉아 땀 때문에 이마에 붙은 머리칼을 하나하나 떼주기 시작했다. 다정한 건 여전하구나, 레귤러스. 전 다정하지 않은걸요? 슬쩍 눈알만 굴러 그를 보니 전체적인 매무새가 흐트러져있었다. 그대로 시선을 올려 레귤러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은회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눈동자와 마주하자 내리눌렀던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레귤러스."

"네."

"혹시, 너 형제가 있니?"

 

흠칫-몸이 굳는 레귤러스의 반응에 그녀는 금세 눈치챘다. 있구나. 긍정하듯 침묵하는 레귤러스의 반응에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네 형제 이름이 시리우스야?"

"...세베루스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음..설명하긴 복잡한데..."

 

저번에 내 친구가 소개시켜준 사람이거든. 제 겉옷을 벗어 둘러주는 레귤러스의 행동을 지켜보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너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정말 안하무인도 그런 안하무인이 없었다니까. 아 물론 그 옆에 있던 제임스 포터란 사람도 마찬가지이긴했는데. 아 그러고 보니 그 자식이 내 릴리에게 이상하게 추파를 던지는 것 같았는데 막는다는 걸 그냥 내버려둬서 어쩌지. 그래도 그 루핀..? 그 사람은 그나마 정상인같아보였어. 그녀의 말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익숙한 이름들에 레귤러스는 미세하게 미간을 찌뿌렸다. 세베루스가 릴리 에반스와 둘도 없는 친구라는 것에서 언젠간 들킬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빨랐다. 아니, 그가 빠르다고 생각하는 것 일지도 몰랐다. 자신이 벌써 호그와트 5학년이니. 문득 작년 시리우스가 집을 나간 일이 생각나자 기분이 한없이 나빠졌다. 어두워진 레귤러스의 표정에 세베루스는 하던 말을 멈추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 말이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너무 내 이야기만 했지."

"아니에요. 세베루스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게 아니에요.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하네요. 음...사실 저는 제 형과 사이가 별로 좋은 편이 아니라서요. 형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나빠졌던 거에요. 신경쓰지 마세요."

 

씨익 웃으며 얘기하는 레귤러스의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위태로워서 세베루스는 눈썹을 모았다. 언제나, 레귤러스는 제 이야기에만 관심을 주고 제 이야기는 잘 꺼내지 않았다. 어릴 적 처음 만나고 몇 번 이후론 말이다. 그것이 못내 불쾌해서, 세베루스는 자신도 모르게 말이 날카롭게 나갔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네게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겠다."

"...네?"

"내가 널 한 두 번 본 것이 아닌데 숨기려 하지마. 난 네 형과 네가 무슨 일이 있었고 사이가 왜 나쁜지는 몰라. 억지로 캐묻는 것이 예의가 아닌걸 알고 있었기에 참았어. 하지만 네가 그런 반응까지 나올 정도면 예삿일이 아니라는 거겠지. 난 그게 불쾌해. 나는 나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너는 왜 숨기려 하지? 내가 믿을만하지 못해서? 어줍잖게 이해할까봐? 최소한 그런 반응이 날 기만하는 것 정도라는 것쯤은 눈치채 줄 것이라 알았는데 내가 널 과대평가했니?"

"세베루스."

"힘들면 왜 기대질 않아? 나는, 적어도 받은 것은 돌려주자는 사람이야. 너도 네가 내게 기댈 기회정도는 주면 안되는거야?"

 

말을 하다 울컥 감정이 올라온 듯 입술을 깨무는 그녀의 인상은 한없이 일그러져있었다. 저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흑안을 보자 레귤러스는 목까지 올라왔던 여러가지 변명거리가 제 목을 턱하니 막는 느낌이었다. 사는 세계가 다르니, 이해하지 못해. 내면에 감춰져있던 제 진실을 그녀가 억지로 끄집어냈다. 사실 그랬다. 너무나 힘들어서, 기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제가 짊어지고 있는 짐은 너무나 무거웠다. 물을 머금는 솜처럼 점점 무거워지는 짐때문에 살아가는 세상조차 다른 그녀에게 기대었다간 그녀마저 도망칠까봐, 무서웠다. 세베루스 . E . 스네이프는 제 도피처이자, 안식처이자, 이제는 세상이었다. 그녀에게도 자신은 제 사람이었다. 저도 모르게 그녀를 껴안았다. 마주 안아 등을 토닥여주는 손길에 두려움이 사르르 녹아났다. 이런 사람인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어린 날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만난 것은 제 인생의 최고의 행운일 것이다.

 

"당신이 마법사였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뭐...?"

 

아무것도 아니에요. 감정을 갈무리하고 그녀를 껴안은 팔을 풀어내었다. 올곧게 자신을 그대로 바라봐주는 저 눈빛에 다시 한번 감동한다. 그녀가 저와 함께 호그와트를 다녔다면 그녀는 어디였을까? 누구보다도 슬리데린이었지만 동시에 제겐 그리핀도르였다. 씨익 웃자 허탈하진 듯한 얼굴의 그녀가 보였다. 일단 그 시리우스 블랙과 제임스 포터는 싫어해도 되는 것이지? 물론이죠, 세베루스.

 

마법사라는 것은 감추고-이것은 법이 막고 있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자신의 집안에서의 시리우스와 자신의 위치, 시리우스와 집안의 불화, 그리고 작년의 시리우스의 가출을 늘어놓았다. 말을 하면서도 흘끔흘끔 그녀의 반응을 계속 살폈지만 무표정으로 일관된 자세로 세베루스는 계속 경청했다. 시리우스의 가출로 인해 제가 시리우스의 역할을 대신 맡게 되었다는 말을 늘어놓자 그녀의 미간은 한없이 모아졌다.

 

"역시 내 예상대로 그 자식은 인간 말종이군."

"하하하."

 

형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은 세베루스밖에 없을 걸요? 속으로 말을 삼키며 그녀의 반응 하나하나를 눈에 새겨넣었다. 이 사람을 정말로 지키고 싶었다. 내 사람. 시리우스의 사람이 아닌 온전한 내 사람.

 

"세베루스."

"왜?"

"고마워요."

 

뭘?- 반문하는 세베루스의 말에 조용히 미소짓고는 다시 한번 그녀를 가볍게 안았다. 부드러운 비누향이 살짝 남아 코끝을 간직이는 이 느낌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 기억하고자, 오랫동안. 그렇게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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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베루스와 레귤러스는 어릴 적 우연히 머글 거리를 방황하던 레귤러스를 세베루스가 도와준 후 지속적인 만남을 가졌다.

 

+세베루스와 레귤러스를 미행할 당시 마루더즈들 중 마법을 쓴 사람은 시리우스밖에 없다. 시리우스를 제외하곤 제임스와 리무스는 아직 성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그와트는 기숙사제 학교이기 때문에 방학 때가 아니면 둘은 만나기 힘들다. 때문에 둘은 연락을 주고 받을 때는 편지를 사용한다. 부엉이 편지는 머글인 세베루스에게 이상한 것일 수 있기때문에 부엉이에게 배달원에게 몰래 전달하도록 따로 지시한다-릴리도 이런 방식을 통해서 세베루스와 연락을 주고받는다.

 

+세베루스의 부모님인 토비아스 스네이프와 에일린 스네이프는 금술이 좋기로 유명하다. 쾌활한 두 사람 사이에서 세베루스 같이 무뚝뚝한 딸이 태어났다는 것이 아직도 미스테리.

 

+에일린 스네이프는 마법사이긴 하나 마법에 대해선 꽁꽁 숨겨놓았다. 그러나 토비아스에게 그것을 들켰었고 이야기를 잘 마무리하게 된 두 사람은 더욱 굳건해졌다. 비 온 뒤 땅이 굳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두 사람은 마법에 대해선 자신들의 딸에겐 비밀로 하고 있다.

 

+릴리와는 마법에 관해서 만난 것이 아니다. 놀이터에서 책을 읽고 있는 세베루스에게 호기심을 느낀 릴리가 다가가기 시작하면서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페투니아 에반스와도 나쁘지 않은 사이다.

 

+세베루스는 기본적으로 무뚝뚝하고 사람에게 관심이 적지만 제 사람이라는 틀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애정과 희생을 퍼준다. 그래서 한 번은 릴리에게 혼이 난 적이 있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스네이프 가족은 가난하지 않다. 토비아스가 생각보다 능력이 좋은 사람이었고 어엿한 기술자이기 때문에 잘 살기는 못해도 세 사람이 먹고 살기 넉넉할 정도로는 번다.

 

+세베루스는 의외로 요리를 잘한다. 사실 에일린이 지지리도 요리를 못하기 때문이다. 토비아스의 실력은 딱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요리를 만드는 수준이기에 요리책을 하나 사서 그녀 스스로 독학했다.

 

+그녀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화학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이 과목을 빼놓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

 

+레귤러스는 방학 때 세베루스를 몰래 만나고 온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오리온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세베루스가 그토록 욕하던 시리우스는 생각보다 그녀를 마음에 들어했고 둘이 어느 순간 친해진다. 하지만 세베루스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레귤러스가 호그와트를 졸업하고 세베루스의 중재로 극적인 형제 간의 화해를 맞이하게 된다. 서로의 가치관 차이가 교류없이 쌓여서 오해가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에 사실 시리우스나 레귤러스 둘 다 적잖이 안심했다. 적어도 두 사람 자체를 미워하지 않아서라는 이유를 아는 세베루스는 말없이 두 사람의 뒷통수를 때렸다.

 

+제임스와 릴리의 결혼식 날 제임스는 식장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세베루스에게 몰매를 맞았다. 울긋불긋한 얼굴은 시리우스가 말끔히 고쳐주었다.

 

+세베루스가 마법에 대해 알게 된 건 어이없게도 철통보안을 강조했던 릴리에 의해서였다. 제임스가 보낸 로맨틱한 말이 절절히 적힌 호울러를 아무생각없이 뜯어보았다가 놀러온 세베루스가 기함을 토해냈다는 것은 비밀이다.

 

+시리우스는 블랙 가로 돌아왔다. 가주가 되는 교육을 받을테니 레귤러스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터치 하지 않겠다는 조건이었다. 당황해하는 레귤러스에게 시리우스는 비밀이라면서 자신이 블랙 가를 바꿀 것이라 속삭였다.

 

+시리우스가 블랙 가로 돌아오고 오리온은 태도가 조금은 유해졌다. 그의 변화를 보고 발부르가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레귤러스는 이 변화가 정말 좋았다.

 

+세베루스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인지 원작에서처럼 음울한 아이는 아니다. 조금 이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제 사람에 대해서는 성인처럼 구니 쌤쌤이다.

 

+어린 날 레귤러스는 자신을 도와주는 세베루스에게 굉장히 예의없고 무례하게 굴었었다. 그는 그 첫 만남을 두고두고 후회 중이다. 현재진행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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