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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y Potter

[레귤스네] 레귤러스의 독백

 첫인상은 구질구질한 남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

 

 온 몸이 푹 젖은 것이 오늘도 망할 제 형과 그 무리들의 괴롭힘이 있었으리라. 입술을 악물고 같이 젖어버린 책을 말리는 모습은 눈길이 가지도, 갈 이유도 없다. 처량한 뒷모습에서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벗어나버린다. 미천한 혼혈, 그 말이 세베루스 스네이프에게 지독하리만큼 잘 어울렸다.

 

*

 

"안녕."

 

 루시우스의 소개로 자신의 앞에 서 인사를 하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아, 한심해라. 절로 한심함을 비추려하는 눈빛을 다잡고 미소를 짓자 더욱 고개를 숙이는 그는 작았다. 안녕하세요 스네이프. 내민 손을 잡지 못하고 쭈뼛거린다. 주먹만 쥐었다폈다 하는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화들짝 놀라는 폼이 썩 웃기다. 입매를 더욱 날카롭게 벼려 세우곤 다정함을 덧칠한 목소리를 흘린다. 잘 부탁해요.

 

 순간 마주친 눈동자는 더러운 혼혈도, 괴롭힘을 받는 왕따도 비추지 않았다.

 

*

 

 책에 파묻혀 무언가를 적어내려가는 스네이프의 모습은 이제 익숙하다 못해 없으면 허전할 정도이다. 마땅히 앉을 곳이 없어 옆자리에 앉아 공부하기를 근 몇 달이 되니, 그의 습관 하나하나까지 외울 지경이다. 가볍게 깃펜이 양피지에 마찰하며 적당히 듣기 좋게 서걱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즐겁게 울리기 시작하면, 과제물을 꺼내 자신도 과제를 시작하거나 책을 읽는다. 루시우스의 권유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조용한 그의 분위기에 휩쓸려 집중도 잘되었기에 큰 불만은 없다. 루시우스가 이를 감싸주는 저의가 무엇일까, 내심 궁금하다.

 

 무심코 본 스네이프는 책에 거의 머리를 파묻다시피 공부하고 있다. 옆머리를 넘겨주자 당황스러움을 담은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걸리적거려 보여서요. 자신도 몰랐던 번명거리를 꺼내며 다정함이란 가면을 쓰고 웃어준다.

 

*

 

 방학을 맞아 블랙가로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시리우스와 부모님의 말다툼 소리가 제 방까지 울린다. 다소 거칠게 베게를 내려놓고 침대에 몸을 뉘인다. 귀를 막아보지만 큰소리는 애석하게도 귀에 콕콕 박힌다. 시끄럽다. 문득 호그와트 도서관에서의 조용함을 다시 떠올린다. 답답하다.

 

*

 

 개학하고 도서관으로 가자 언제나처럼 스네이프가 있다. 옆자리에 앉자 흘끔 자신을 보더니 다시 앞에 책에 눈길을 돌린다. 일상적인 평온함에 아까까지의 묵직한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진다.

 

"...안녕 블랙."

 

 중얼거리듯 흘린 말이었지만 자리가 기까워서일까, 너무나도 명확히 들린다. 눈을 살짝 크게 뜨고 바라보자 그의 귀가 조금 빨개져있다. 아, 순간 귀엽다고 생각해버렸네. 재빨리 손으로 입가를 가렸지만 허물어진 입가는 쉽사리 돌아오질 않는다. 블랙? 내 반응이 당황스러웠을까, 검은 동공이 흔들린다. 6개월만의 첫 대화의 스타트는 생각지도 못하게 그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끊었다.

 

*

 

 죽음을 먹는 자가 순리대로 흐르듯 되고 왼팔의 고통을 억누르며 세베루스를 찾는다. 마법의 약 연구실에서 부글부글 끓는 솥단지를 날카롭게 바라보는 눈빛에 잠시 왼팔의 고통을 잊어본다. 문에 기대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세베루스의 눈이 저를 바라본다.

 

"레귤러스?"

"오랜만이에요, 세베루스."

 

 방해하고 싶지 않았는데.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세베루스의 모습을 보는 것을 즐기는 것을 좋아했지만 제게 이리 신경 써주는 세베루스도 좋아했다. 움켜잡고 있던 팔을 내밀어보인다. 오늘 드디어 그 분의 밑에 들어갔어요. 고통에 시야가 흐려진다. 다정하게 손수건으로 제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주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체온이 낮은 손길은 서늘했지만 기분이 좋다. 눈을 뜨면 자신을 걱정해주는 눈을 마주하겠지, 잠시 실없는 상상을 해본다. 너무 무리하지마, 레귤러스. 알았어요.

 

 얼굴에 머물러있는 손을 잡아채자 움찔하는 느낌이 피부를 타고 올라온다. 살며시 눈을 떴다. 예상처럼 무표정한 얼굴 위로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걱정을 드러낸다. 조금은 빠른 심장박동에 미소를 지어내보였다. 이걸로 조금은 당신과 더 가까워졌네요.

 

*

 

 크리쳐가 다쳐돌아온 날 밤. 자신은 더 이상 볼드모트의 밑에서 충성할 수 없었다. 어린 날 동경했던 모습은 어느 순간 사라져있었다. 머리를 감싸쥔다. 나는 왜 이곳에 있을까. 세베루스가 보고싶어. 그 한 마디에 본능적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세베루스의 연구실에는 약병들이 즐비했고 약들은 끓고 있는 채 방치되어있다. 책상 위에 엎드려 졸고있는 그의 모습에 거칠던 숨이 잦아든다. 덥수룩한 검은 머리를 쓸어 그의 얼굴이 좀 더 잘 보이게한다. 어린아이처럼 평온한 얼굴 위에 자리한 옅은 입술이 보인다. 고개를 숙여 살며시 대었다가 떼었다.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그의 밑에 있는 건가요, 말해주세요."

 

 들릴 리 없는 말이 연구실 안에 조용히 퍼져나간다. 입술을 앙 다물고 두 눈 안 가득찬 눈물을 한 방울씩 흘려내린다. 릴리 에반스인가요, 세베루스? 아직 그녀를 잊지 못한건가요? 당신의 적인 포터의 아내가 된 그녀를? 무엇이 당신이 그녀에게 붙잡고 있는건가요? 정신없이 내뱉는 말에는 가시가 가득 담겨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다. 날 봐줘요 세베루스. 마지막 말 을 끝으로 지팡이를 쥐고선 그 방을 빠져나온다.

 

*

 

 크리쳐에게 명령을 내리곤 잔을 들어 액체를 가득 채웠다. 넘칠 듯 찰랑이는 액체에 헛웃음이 나왔다. 입술에 닿는 액체는 소름이 끼치도록 차갑다. 목을 타고 흐르는 몇 방울의 액체로 몸이 싸늘히 식어가는 느낌이다. 한 잔, 두 잔, 크리쳐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손은 멈추지 않는다. 들이킬수록 타오르는 목은 적셔줄 무언가를 간절히 원했다. 바닥이 보이고 거칠게 로켓을 쥐어 크리쳐에게 건넨다. 덜덜 떨려오는 손을 억지로 펴 쥐어주자 크리쳐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진다. 첫 만남의 세베루스도 이런 표정이었지. 쓰게 웃는다.

 

 눈길은 찰랑거리는 물가로 향한다. 아아, 목이 말라. 검은 시체들이 자신을 붙잡아오는 손길도 느끼지 못하고 중얼거린다. 깊어져 가는 수심에도 몸은 움직이지 않아. 마지막 얼굴이 잠기면서 세베루스의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보고싶네요. 세브.

 

 그는 더 이상 제게 구질구질한 남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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