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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혼

[카무오키] 마음 한 조각



주륵-한 방울의 땀이 부드럽게 완만한 곡선을 따라 흘러내린다. 뽀얀 피부를 반 이상 드러내며 카무이의 입가는 평소와 달리 일자를 긋는다. 카무이의 아래 깔린 남자는 내뱉는 숨결마다 거칠기 그지없다. 카무이 본인보다는 조금 까무잡잡한 편이었지만 사내라 보기에 하얀 것은 마찬가지이다. 붉은 꽃이 이곳저곳 피어난 상체는 바깥공기를 마신지 오래였다. 진선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검은 제복은 이미 갈가리 찢겨진 채 발치 저 어딘가에 구르고 있을 것이다.


젠장...

작게, 하지만 확실히 들을 수 있는 욕설은 현재 그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간질이는 붉은 머리칼을 지금 당장이라도 다 뜯어버리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제 허리는 정말 바스러지리라. 조금이라도 몸을 편히 하고자 몸을 살짝 뒤척이니 이내 허리를 강하게 죄어오는 손길이 느껴진다.


"움직이지마."


단호히 한 마디만이 귓가에 들려왔다. 평소와는 다른 말투에 오늘 기분이 안좋은 것일까 생각되었지만 상관없다. 어찌되었든 제 허리가 오늘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했으니까. 평소에는 그래도 조금은 흥분을 유도하면서 부드럽게-지딴에는 부드러운 것이다-풀어주었으면서 오늘은 보자마자 입술을 먹어버릴 듯 삼키더니 바로 이 꼴이다. 아아, 또 며칠간 방 구석 폐인 꼴로 살 생각을 하니 골치가 아프다. 허리를 둘째치고서라도 가슴 위 울긋불긋한 멍울을 감추기도 급급할 것이다. 망할 히지카타한테는 뭐라 변명하는 것이 좋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히지카타는 모를 것이다. 명색에 경찰이라는 새끼가 범죄자, 그것도 일급 범죄자와 질펀하게 몸을 섞는 사이라는 걸. 사실을 알게 된 히지카타의 식은 얼굴을 생각하니 유쾌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진다. 순간 내 위에 있던 녀석과 눈이 마추친다. 벽안 너머로 느껴지는 감정이 퍼져나왔다 다시 흐려진다.


"너 말야..."

"뭔데."

"지금 누구 생각하는 거야?"


뜬금없이 나오는 말에 당황스러움도 잠시,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퉁명스럽게 대꾸하려던 순간 입을 다물게 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 히지카타라는 녀석?"

"..?!"


언제 히지카타를 만난 적이 있었나 생각할 겨를 없이, 내 머릿속은 새빨간 경보가 울리는 것만 같다. 어째서? 오키타의 붉은 눈이 동요를 보임과 동시에 카무이의 푸른 눈은 점점 가라앉았다.


역시 그 녀석이구나?

물음이 아닌 단정. 오키타는 재빨리 머리를 굴렀다. 뭣 때문에 이 녀석의 기분이 다운 된 건지는 몰라도 진정시키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자신의 목을 분질러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뇌의 생각을 담당하는 부분이 터저버린 느낌이다.


"소고."


 매혹적인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제 이름에 오키타는 흠칫 놀란다. 번뜩이는 눈빛이 코 앞까지 다가온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오는 느낌이 익숙하다. 그러나 또 평소와는 다르다. 몇 번 부드럽게 무는가 싶더니 갑자기 이를 세워 뜯어먹어버리 듯 입술을 깨물었다.


부어오른 잇자국 사이로 꽤나 많이 배어나오는 피를 혀로 길게 핥아내린다. 비릿한 쇠 내음이 입 안 가득 퍼졌다. 그리고 오키타의 어깨를 잡았던 손에 힘을 준다. 윽,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찡그린 미간이 카무이의 눈 앞에 들어온다.


" 그 자식 생각하지마."


어깨를 부술 듯 움켜잡던 손은 우악스럽게 다리를 벌려낸다. 아까의 정사로 끈적거리는 다리 사이에 카무이가 자리를 잡는게 여실히 느껴진다. 놀란 맘에 몸을 위로 피하자 발목을 잡아당겨 끌어내린다. 잡고 있던 발목을 끌어올려 자신의 어깨 위로 올린,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자세에 오키타가 뭐라 소리칠 틈도 없이 카무이의 몸이 그의 몸을 덮어왔다.


*


아침 햇살은 언제나 눈이 부시다. 평소에 쓰고 자던 안대는 어디 갔는지 몰라도 환하기만 한 아침 햇살은 오키타의 눈을 괴롭힌다. 이불을 들추고 일어나려던 순간 허리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통증에 자리에 다시 드러눕게된다.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이를 벅벅갈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불부터 시작해 방 안 풍경이 둔영 안 오키타, 본인의 방이라 어리둥절하다. 혼자서 둔영으로 돌아온 기억은 없었는데 말이다. 몸도 깨끗이 씻겨져 있는 것이 카무이 그 자식이 옮겨준 것임이 틀림없다.


"그 자식..."
 

어젯밤 그런 상태의 녀석을 보는 건 한번으로 족했다. 시린 눈 안에 자신이 담기는 순간 온 몸이 차가워지는 느낌. 살짝 닭살이 돋은 팔을 한번 비비고는 이불을 코 끝까지 올린다. 초가을이지만 아직 아침은 좀 쌀쌀했다. 다시 눈을 감고 잠이 들까,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복도 저편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히지카타 망할 자식인가....평소라면 방문이 열리기 전 바주카포를 들고 대기하고 있다 쐈겠지만 몸 상태도 상태다보니 그마저도 귀찮아진다.


"소고."


이불 안으로 모습을 감춘 오키타를 끌어내는 솜씨만큼은 칭찬해 줄 만하다. 이불을 확 들어내고는 담배냄새를 풍기는 꼴이 그의 눈에는 아니꼽게만 들어온다.


"벌써 아침이다. 이제 일어나."

"히지카타씨, 저 졸립니다."


그러니까 좀 잘게요-하며 이불을 다시 덮으려는 손길에 히지카타는 한숨을 내쉰다. 다시 한번 이불을 들추고 어깨를 확 틀자 오키타의 입에선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신음을 흘린 본인도 놀란 것인지 입을 확 틀어막고는 히지카타 몰래 허리를 살살 주물렀다. 속으론 히지카타의 욕을 미친 듯이 하며 말이다. 정적만이 흐른 몇 분이 지난 후 그는 오키타의 어깨를 살며시 놓더니 방문을 나섰다. 빨리 나오라는 말과 함께 덧붙여 말이다.


옷장 안의 새 옷을 꺼내 입고는 최대한 아픈 티를 내지 않으며 걸었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허리를 찌르는 둔탁한 통증이 가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등 쪽으로 흐르는 식은땀에 제복이 축축하게 젖어들어가는 것만 같다. 간신히 히지카타의 방에 도착해 방문을 열자 사복차림의 그가 보인다.


"히지카타씨, 오늘 비번 아닌데요."

"너랑 나 오늘 쉰다고 곤도씨한테 말해놨으니까 괜찮다. 그보다 너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

"예?"


뜬금없이 휴가라니....벙쩌있는 오키타를 부르며 나가는 발걸음에 자연스레 둔소 밖을 따라나갔다. 앞에서 걸어나가며 가끔 흘긋거리며 뒤에있는 저를 쳐다보는 것하며 평소보다 걷는 속도를 느리게 맞춰 주는 것이 명백히도 아침의 일을 신경 쓴 탓이리라. 저 히지카타에게 배려받는 다는 느낌이 썩 좋지만은 않다. 몸만 좋았어도 저 뒷통수 한 번은 노릴 수 있었을텐데.


체감상으론 한참이었지만 실제 10분도 되지 않아 평소 진선조가 자주 이용하던 의원이 보였다. 왜 이 쪽으로 온 건지 영문을 몰라 눈만 꿈벅거리자 흑발을 휘날리며 고개를 까닥인다. 담뱃불을 발로 짓이겨 꺼버리고는 저 혼자서 휘적휘적 안으로 들어선다. 따라들어가야하나 잠시 망설였지만 이 몸으론 어짜피 도망치기도 녹록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의원 특유의 약재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져 나온다. 넉살좋은 할아버지 의원이 고개를 빼꼼이 내밀어 인자하게 웃음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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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더 있는 내용이랑 떡신은 나중에 찬찬히 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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