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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즈키의 냉철

[호오하쿠/귀백] 기다림의 끝 오니는 신수를 바라보았다 신수는 오니를 바라보지 않았다. 몇 천년간의 기다림 끝에, 오니는 신수를 바라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신수는 오니를... * "안녕, 망할 오니?" "여긴 어쩐일입니까, 백돼지." 백돼지 아니거든!-발끈하며 제게 앙칼지게 쏘아붙이는 목소리에도 더 이상의 예전같은 감흥이 일지 않는다. 말갛게 올려다보기만 하는 눈동자에 백택은 순간 흠칫했지만 곧 제 페이스를 되찾는다. 품 속에 잘 가지고 온 약봉지 두 어개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는 휘적휘적 염마청 문 너머로 사라져버린다. 잠시 머뭇거린 손 끝을 갈무리하고는 종이봉투를 집어든다. 알싸한 약재 내음과 함께 그 망할 신수의 체취가 발자취를 자욱히 남겨놓았다. 그러나 마음이 쓰이지는 않았다. 호오즈키는 망설임 없이 봉투를 찢어내었다. 길고도 .. 더보기
* 1. 어린 아이는 생각했다. 추적거리는 빗방울이 메마른 입술은 적셔내렸지만 이미 몸은 그마저도 느끼기 힘들었다. 흐릿한 초점 위에 펼쳐져 있는 것이라곤 울창한 나무뿐, 그 누구도 없다. 차가운 냉기가 자신의 몸을 감싸는 것을 내버둔 채, 그렇게 아이는 눈을 감았다. 2. 어린 오니는 생각했다. 차갑기만 하던 나무 제단은 어느새 사라지고 푸른 잔디가 저를 감싸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이마에 새겨진 작은 뿔을 가만히 만져볼 뿐이다. 단단한 그것이 퍽 익숙치 않다. 제 주변을 떠도는 작은 불꽃들에 오니의 눈이 빛을 받았다. 하나를 붙잡아 그대로 입 안에 쑤셔넣었다. 따뜻함이 식도를 타고 넘어감과 동시에 몸 안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몇 번의 손길에 불꽃들이 없어져 버린다. 3. "새로 태어난 오니로구나." 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