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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야치] 마음이란 무엇인가-2

잔뜩 얼어, 내려달라는 말조차 까먹은 듯 제 옷깃만을 움켜쥔 손길에 아카아시는 슬쩍 눈을 돌렸다. 하얗게 질릴 정도로 쥔 주먹이었다. 머리칼에 가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얼굴도 필시 저 주먹만큼이나 새하얗게 물들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도 아님, 새빨갛겠지. 야치를 안은 손에 조금 더 단단하게 힘을 주었다.

 

보건실에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가장 안쪽의, 침대에 야치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비로소 마주친 눈은 당혹감과 불안감, 그리고 약간의 감사함을 담고 있다. 괜시리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깨문 혀가 아픈 것인지 입을 다문 채 살짝 식 굴려대는 것이 보였다.

 

“야치상, 입을 잠시만 열어보시겠습니까? 어느 정도로 다친 것인지 봐야할 듯해서요.”

 

눈을 데구루루 굴리다 야치는 이내 조심스레 입을 벌렸다. 피가 배어나와 입 안에 조금 고여 있는 것 외에는 적당히 피를 멈추게만 하면 괜찮을 수준이었다. 눈길이 닿은 곳은 파르륵 떨어대는 것이 자꾸만 혀를 입 안으로 숨기려 움찔거린다. 실례하겠습니다, 손가락 하나를 조심스레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흡?! 갑작스레 느껴지는 이물감에 야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다른 한 손으로 야치가 턱을 다물지 못하게 붙잡고 집어넣은 손가락으로는 상처가 난 혀를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상처 부위를 건들자 흠칫 놀라 오갈 데 없는 손을 아카아시의 팔뚝으로 올렸다. 차마 힘을 주지는 못하고 떨어대는 진동이 제 팔을 여지없이 두드렸다. 슬쩍 혀를 지나 가지런한 치열을 쓸었다. 선홍빛의 그것은 꽤나 예뻐서, 제 것으로 핥으면 어떤 느낌이 날까 문득 상상하였다.

 

“아, 아카아시상...”

 

아-우물거리는 발음의 제 이름을 듣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재빨리 손가락을 빼며 아카아시는 사과를 건넸다. 몸을 일으켜 냉장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냉동실을 열어 피를 멎게 할 얼음 한 개를 꺼냈다. 야치가 입 안에 머금고 있기엔 조금 큰 조각인 듯 했지만 마땅히 얼음을 부술 것을 찾지 못한다. 어깨를 조금 으쓱이곤 아카아시는 그대로 아치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야치가 보지 못하는 사이 슬쩍 입 안으로 집어넣었던 손가락을 혀로 훑어 내렸다. 찝찔한 피 맛이 약간 감돌았다.

 

“이거 입에 물고 계시겠습니까.”

“아, 네!”

 

자못 비장하기까지 한 얼굴로 얼음 조각을 쳐다보는 야치의 눈매가 동그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역시나 키스를 부르는 눈이었다. 여기서 입 맞추면 그녀는 자신을 미친놈 취급할까, 생각을 데구루루 굴려보았다.

 

“여기 있습니다.”

 

야치의 손바닥 위에 살며시 올려주자 차가움에 몸서리치다 곧 입 안에 집어넣는다. 역시나 얼음조각이 커 볼이 불룩해졌다. 마치 노란 햄스터인양 잘 오물거리는 양 뺨이 발그레해진다. 달각거리며 입 안에서 얼음이 굴러가는 소리가 조용한 보건실 안에 울렸다. 간간히 녹은 물을 삼키려 울렁이는 목이 눈에 들어왔다. 저도 모르게 아카아시는 침을 삼켰다. 목을 넘어가며 나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느껴져 아카아시는 야치의 눈치를 살폈다. 눈이 마주쳤다. 야치의 얼굴에 어색한 웃음이 감돌았다. 딱딱하게 굳은 눈동자가 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짧은 감탄사가 뱉어졌다.

 

머릿속 경고등이 빨간 불을 애처롭게 울렸다. 벌어질 일은 그저 한 순간일 뿐이다.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말캉하게 닿는 입술은 차가웠다. 당혹스런 눈동자가 마주함도 잠시, 아카아시는 눈을 감았다. 두 손으로 야치의 뺨을 잡아 들어올렸다. 고개가 꺾이자 입이 벌려졌다. 망설임따윈 없었다. 허락 없이 침입한 혀가 입 안을 휘젓자 덜 녹은 얼음이 같이 굴렀다. 따뜻한 혀에 순식간에 녹아버리고 차가웠던 입 안이 뜨거워졌다.

 

끼익-매트리스 스프링이 튕기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허리를 감아 끌어당겼다. 그 힘에 중심을 잃어 야치가 뒤로 넘어갔다. 잠시라도 떨어지는 입술이 야속해 쫒아갔다. 야치가 채 삼키지 못하는 타액을 그가 받아 마셨다. 눈을 떴다. 얇은 금발이 시트 위에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울고 있는 야치의 모습이 보였다. 아, 순식간에 찬물을 확 끼얹은 것 마냥 이성이 돌아왔다. 제 팔 안에 가둬진 작은 몸은 애처로울 정도로 떨고 있었다.

 

“흐윽...아, 아카아시상...”

“...죄송합니다, 야치상.”

 

일으켜 가만히 야치의 등을 토닥였다. 손끝의 감각이 움찔거리는 야치의 두려움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러나 토닥이는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아카아시조차 순간 느끼지 못했다. 문득, 자신이 정상은 아닌 게 맞을 것이라고 아카아시는 깨달았다. 한참을 진정시켰을까, 헐떡이던 숨이 조금 가라앉자 아카아시는 제 손수건을 꺼내 야치의 입술을 닦아주었다. 부어오른 입술의 안쪽이 살짝 찢어져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이번 일은 제 실수가 맞았다. 아카아시는 다시 얼음을 종이컵에 담아와 손에 손수건과 함께 쥐어주었다.

 

“일단, 이걸로 라도 닦고 지혈하세요. 방금 일은, 죄송합니다.”

“아...그...”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천천히 나오세요.”

 

얼버무리며 아카아시는 재빨리 보건실을 빠져나왔다. 야치의 얼굴을 다시 봤다간 이번에야말로 멈추지 못할 것이라 어렴풋이 느꼈다. 제 입술에 닿던 감각이 떠올려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이내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떨쳐 내버렸다. 체육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묵직했다.

 

*

 

“히토카짱 무슨 일 있었어?”

“네?! 아, 아뇨...!!”

 

시미즈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야치는 고개를 휙휙 꺾어가며 부정했다. 의문이 가득 차 있는 얼굴이었지만 순순히 물러난 시미즈에 야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연스레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몰래 그 과정을 지켜보던 아카아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건실에서 있었던 일 이후 야치는 지나치게 아카아시를 의식했다.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화들짝 놀라 저만치 도망가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불쾌함이 더욱 컸다. 그 보쿠토 선배도 제게 조심스레 다가와 야치와 무슨 일 있었냐며 묻기까지 했으니 말 다한 셈이다. 아카아시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이대로 있다간 이번 합동 연습 때도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할 것이 뻔했다. 맞닿았던 입술의 감촉이 떠올랐다. 아, 이런

 

“아카아시 너 진짜 무슨 일 있어?”

 

보쿠토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동물적인 감각인지 이럴 때만 은근히 촉이 좋은 주장의 모습에 아카아시는 눈을 내리깔며 뒷목을 주물렀다. 연습 게임 내내 야치 입술의 감촉이 떠올라 집중할 수 없었다, 그리 실토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 일도 없습니다. 괜찮아요.”

“흐으음...정말로?”

 

어이, 보쿠토 빨리 와!- 저 멀리서 저를 부르는 쿠로오의 목소리에 뚱한 얼굴로 보쿠토가 자리를 떴다. 어느새 흘러내린 땀을, 아카아시는 그저 가만히 닦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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